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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상징주의 시론과 시 비교연구

A Comparative study on Korean and Chinese Symbolistic poetics and Poetry

초록/요약

상징주의는 한·중 양국의 근대시문학사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상징주의의 수용은 한국 시의 근대적 변용의 모멘트가 되었고 한국 시는 이를 통하여 기법과 운율, 시적 정서와 상상력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변모를 갖게 되었다. 특히 자유시의 개성적 운율에 대한 자각도 상징주의 수용을 통해 본격화되었다. 건설기에 접어든 중국의 신시(新詩)는 상징주의의 수용으로 인해 ‘백화(白話)’에서 ‘시(詩)’를 추구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시학 관념, 신미 원칙, 표현 기교를 창설하면서 독특한 미학 품격을 갖춰 중국 신시에 선명한 근대 특질과 시학의 건설 풍모를 부여하였다. 이와 같이 양국의 시문학사에 있어 현대시를 향한 본격적인 근대시의 출발은 프랑스 상징주의 문예사조의 수용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근대시 형성기에 있어 프랑스 상징주의 사조의 수용과 전파에 선구적 역할을 하였던 한·중 상징주의 시인들의 시론과 시 작품을 비교 분석하며 1920년대 양국의 상징주의 시 세계를 체계적으로 살펴보았다. Ⅱ장에서는 한국의 상징주의 시인인 김억·황석우·박영희의 시론과 중국의 상징주의 시인인 穆木天·王獨淸·李金髮의 시론을 중심으로 양국의 상징주의가 가지고 있는 이론적 체계를 파악하였다. 그 결과 이들은 모두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들의 영향을 받아 상징주의 미학의 특징인 ‘음악성, 암시성, 조응 시학’을 자신의 시론에 수용하였으며 나아가 이를 변용하였음을 볼 수 있었다. 20세기 초 과도기에 접어든 근대 한국과 중국의 문단에서는 공통적으로 ‘새로운 시’에 대한 모색이 시작되면서 자유시형의 개발을 시적 과제로 삼아 자유로운 정서 표현과 자유로운 형태를 추구하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양국의 상징주의 시인들은 상징주의 시론을 수용하며 ‘음악성’을 강조했다. 또한 이들은 시 창작할 때 ‘기술’이나 ‘설명’을 부정적으로 보았고 시의 ‘암시성’을 제기했다. 한국 시인들의 시론에서는 상징을 ‘암시나 신비’로 보아 상징주의의 핵심을 잘 포착했고, 중국의 상징주의 시론에서는 ‘암시’를 주로 ‘표현 수법’으로 이해하였다. 또한 양국의 시인들은 모두 보들레르의 조응 시학의 영향을 받았음을 확인하였다. 하지만 한국의 1920년 초기에 소개된 상징주의 시론에서는 상징주의의 구조면에서 가지는 상호교응의 의미에 대한 체계적이고 깊이 있는 이론은 다소 미흡했다. 반면 중국에서의 조응 시학은 보다 활발하게 수용되고 변용되었다. Ⅲ장에서는 Ⅱ장의 상징주의 시론을 토대로 양국의 상징주의 시인들이 시를 창작할 때 자신의 시론을 작품에 적용한 양상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시인들은 자유로운 운율 구사를 통해 음악미를 구현하고자 했다. 비록 이들은 자유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정형시의 고정된 형식과 엄격한 격률에서 이탈하고자 하였으나 운율에 대한 무조건적인 부정과 해체를 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운율을 생성하며 다양한 표현 수법으로 시의 리듬감과 음악미를 살리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시인들은 자연에 조락하는 이미지를 통해 짧고 허무한 인생과 비극적 현실 세계를 암시하고자 했으며 몽롱하고 신비스러운 상징적 세계를 구축했다. 또한 보들레르의 조응 시학에 영향을 받은 양국의 상징주의 시에서는 후각, 촉각, 청각, 시각, 미각 등 다양한 감각의 경계를 허물어 서로 교감하게 하는 공감각적 표현을 통해 조응미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Ⅳ장은 한국과 중국의 상징주의 시의 시적 특징을 비애의 정조와 데카당스적 표현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당시 한국은 3·1 운동의 좌절과 실패를 겪은 황량한 폐허의 모습을 띠었고 중국은 5·4운동 후의 문화와 정치의 실망기였다. 이러한 배경에서 양국 청년지식인들은 정서적 절망감을 느끼면서 서구의 상징주의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고 시에서는 ‘비애감’이 주된 정조가 되었다. 이 비애감은 시인들의 상실 체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 장에서는 상실의 유형에 따라 분류하고 비교 분석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비애감은 눈물이나 애수와 같은 신음만으로 멈추지 않았고 더 심화된 ‘데카당스’적 표현까지 이어져 갔다. 시인들은 병들고 파괴된 육체를 통해 생명의 소진을 즐겨 노래했고, 장소와 관련된 시편들에서는 환상성이나 그로테스크 수법을 통해 죽음을 예찬하는 태도를 보였다. 더불어 데카당스의 현상으로 두드러진 관능적 묘사도 빈번하게 나타났다. 이는 모두 현실의 속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고 결국 이성 중심주의에 저항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이 시기의 시에 나타난 데카당스적 표현을 감상주의의 침윤이나 병적 징후로만 읽을 것이 아니라 한·중 양국의 정신문화에 가장 중요한 현상, 나아가 전대의 시대적인 질서에 대한 미학적 항의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데카당스’는 그동안 감상주의 또는 퇴폐주의로 평가받았던 양국의 상징주의 시를 재평가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상징주의는 양국의 ‘새로운 시’의 발전에 동력을 불어넣었고 신미 관념에 대한 전형을 촉진시켰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본 연구는 근대시의 형성과 변모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양국의 상징주의 시인들의 시론과 시 작품에 나타난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함으로써 상징주의를 비교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는 데 이 연구의 의의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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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1
1. 연구 목적 1
2. 연구사 검토 4
3. 연구 방법 및 대상 13

Ⅱ. 한·중 상징주의 시론 비교 16
1. 자유시의 전개와 음악성 추구 20
2. 상징과 암시성에 대한 강조 40
3. 보들레르의 이해와 조응 시학의 수용 56
Ⅲ. 한·중 상징주의 시의 시론 적용 양상 66
1. 자유로운 운율 구사를 통한 음악미 66
2. 자연을 통한 암시와 신비적 상징 80
3. 공감각적 표현과 조응의 미학 98
Ⅳ. 한·중 상징주의 시의 시적 특징 비교 112
1. 상실의 유형과 공통된 비애의 정조 112
1) 유년 체험으로 인한 비애감 113
2) 실연으로 인한 슬픔과 우울 126
3) 떠도는 주체와 방랑의식 138
2. 데카당스적 표현에 나타난 양국의 차이 149
1) 생명의 소진과 파괴된 육체 150
2) 죽음과 관련된 장소의 환상성과 그로테스크 163
3) 관능적 표현에 나타난 초월적 여성상과 에로스적 합일 180
Ⅴ. 결론 195
<참고문헌> 199
<中文摘要> 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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