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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택의 시에 나타나는 ‘몸’의식에 관한 연구

초록/요약

인간의 몸은 전통적으로 이성의 대립적인 위치에 놓여, 이성에 비해 열등한 것으로 인식되어왔다. 이러한 인식은 고대 희랍 철학의 플라톤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순수하고 영원하며 불변의 세계인 ‘이데아(idea)’를 추구하는 것은 오로지 이성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으로 보았다. 그에 반해 인간의 몸은 쾌락과 고통을 추구하며, 이성을 흐리게 하는 경계해야할 대상으로 보았다. 이러한 사유는 인간의 몸을 영혼을 담는 그릇정도로 보았으며, 통제와 억압되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았다. 이러한 성격의 ‘몸’은 물질성만을 인정받아 ‘육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이러한 전통 속에서 니체는 육체와 이성의 이분법적인 구분을 비판한다. 그는 인간 존재란 영혼(이성)인 동시에 육체라고 주장하며, 대상화·타자화되던 몸의 가치를 복권시켰다. 이러한 니체의 사유는 포스트모던 시대에 이성의 대안적 개념이자 그것의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제시된 ‘몸’개념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몸’이라는 개념은 인간의 몸이 이성의 통제를 받는 피동적인 대상이 아니라,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성격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들뢰즈는 인간의 ‘몸’에 대해 ‘신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인간의 몸을 기계로 보았다. 인간의 ‘몸’ 역시 연결되는 항에 따라 전혀 다른 기계의 성질을 갖고 있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그의 사유는 인간과 인간의 몸이 고정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유동적이고 변화의 가능성을 지닌 존재라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이때 인간 신체의 변화는 신체 내부의 유기적인 질서를 의미하는 ‘기관(organs)’이 사라진 ‘기관 없는 신체(corps sans organs)’ 것으로 가능하다. 한국 시에서 ‘몸’에 대한 관심의 시작은 이상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상은 그의 시에서 기형적으로 훼손되고, 해체된 ‘몸’의 모습을 그려낸다. 메를로 퐁티는 인간의 몸은 세계 속에서 실존하기 때문에 인간 실존을 담보하는 중요한 존재인 동시에, 주체와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의 역할을 한다고 본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몸’이 기형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것은 인간 개체와 세계에 존재하는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시사할 뿐 아니라, 양자 간의 상호소통 역시 정상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상은 기형적인 몸을 근대에 의해 조작되거나 훼손된 것으로 그려내며, ‘몸’을 통해 근대 세계 속에서 인간 실존의 문제를 드러냈다. 김수영은 그의 시와 시론을 통해서 ‘몸’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그는 시 속에서 자신의 몸에 대해 자조를 느낀다. 이때의 ‘몸’은 자기존재 자체이자 세계를 향하는 통로인데, 자조를 느끼는 이유는 세계에 적극적으로 기투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김수영은 ‘몸’이야 말로 자기 존재를 실현할 수 있는 기투를 가능하게 하는 존재로 보았다. 또한 시론에서는 ‘온몸의 시학’이야말로 진정한 시작(詩作)의 길이라고 밝히며, 언어보다 언어 이전에 존재하는 모든 ‘몸’적인 것들에 가치를 부여한다. 이후 ‘몸’에 대한 관심은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러 생태와 여성성과 연결되며 각각의 특징을 드러낸다. 생태시와 연결될 때 ‘몸’은 인간의 ‘육체’라는 의미를 넘어서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를 포함한 대자연의 개념과 유사하게 사용된다. 여성성과 연결된 ‘몸’은 생명 일반을 품는 모성으로의 그것의 모습과, 정반대로 가부장제 하에서 왜곡과 훼손이 가해진 뒤틀린 육체의 모습으로 그렸음을 발견할 수 있다. 김기택의 시는 처음부터 ‘몸’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는 등단작인 「꼽추」에서 소외된 인간의 몸을 관찰하는 과정에서 역동적인 생명력을 발견하고, ‘몸’을 인간의 실존과 가치를 담보하는 존재로 보았다. ‘몸’에 대한 김기택의 이러한 관심은 이어 세 번째 시집 『사무원』에 이르러 새로운 모습을 띠게 된다. 『사무원』에 수록된 「사무원」, 「화석」에서는 인간의 ‘몸’의 물화되는 모습을 보인다. 인간 가치를 담보하던 몸이 사물로 변하는 것은, 자본주의사회에서 인간의 가치가 상실되고 있음을 뜻한다. 물화된 ‘몸’은 주체적인 모습을 잃고 피동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점에서, 타자화의 대상이었던 ‘육체’와 같은 모습이다. 이렇듯 김기택은 인간 ‘몸’이 물화되어 육체로 퇴보되는 모습을 그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 소외에 따른 실존의 문제를 전경화한 바 있다. 이어 김기택은 최근 시집 『갈라진다 갈라진다』에서 그동안의 ‘몸’과는 또 다른 새로운 모습을 지닌 ‘몸’을 그려낸다. 이 시집에서 물화된 육체는 자체적으로 스스로를 통제하고 억압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육체 속에서 김기택은 주체적이고 역동적인 움직임을 발견해낸다. 이러한 움직임은 육체의 억압에 대해 저항하고, 그것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투쟁한다. 이때 물화되었던 육체는 내부의 움직임을 억압하는 동시에, 투쟁이 일어나는 장(場)으로서 존재하게 된다. 몸 안에서의 이러한 투쟁은 질 들뢰즈(Gilles Deleuze) ‘신체’ 개념과 맞닿는다. 그렇게 물화된 몸안에서 무한한 투쟁을 통해 인간의 몸은 다시,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몸을 되찾았다. 이는 인간가치회복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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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1. 연구 목적 및 필요성
2. 선행 연구 검토
3. 연구 대상 및 방법
Ⅱ. ‘몸’담론의 형성과 전개
1. ‘몸’에 대한 이론적 고찰
2. 한국시에서의 ‘몸’담론 전개
Ⅲ. 김기택 시에 나타나는 ‘몸’의 양상
1. 육체에서 몸으로의 이행
2. 신자유주의 사회와 물화된 몸
3. 억압된 신체를 극복하는 생동성의 발현
Ⅳ. 결론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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